2008-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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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7 촬영       KONICA MINOLTA DYNAX 5D & Canon DIGITAL IXUS 70

절터에 가다

절은 사라지고 터만 남은 곳이 폐사지(廢寺址)다.
초입에 세워둔 당간지주, 건물을 떠받들던 기단 그리고 석축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찬바람에 안 그래도 마음이 쓸쓸하기만 한데 왠 절터냐고?
누가 훔쳐간 듯 지나가는 한 해가 안타깝기만 한 11월에, 폐사지를 찾는 건 상처에 뿌리는 소금 아니냐고?우울에는 달콤한 초콜릿이 약이 되기도 하지만 우울로 점철된 영화 한편을 보는 ‘자학’이 오히려 확실한 도움이 되기도 하는 법.
폐사지를 다녀온 결론은 ‘쓸쓸함에 완벽히 취하고 털어내려면’ 폐사지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어딜 가나 관광객 한둘 마주치지 않을 곳이 없는 지금, 폐사지는 마주치는 사람 없이 혼자 생각에 잠기기 딱 좋은 곳이다. 아무리 폐사지의 ‘절정 고독’을 맛보기엔 연말이 좋다지만 12월 추운 날씨엔 오돌오돌 떠느라 그 고독도 즐기기 힘들다. 그래서 절터에는 떠들썩한 연말 분위기가 엄습하기 전, 적당히 춥고 적당히 쓸쓸한 지금 가야 한다.
전국에 남은 폐사지는 2000여 군데. 충청도 700여 곳, 경상도 600여 곳, 전라도 200여 곳, 경기도에 160여 군데씩 퍼져있다(이지누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 유명한 폐사지는 경주에 많다지만 서울에서 가기란 보통 큰 마음을 먹지 않고선 쉽지 않은 일. 1시간 30분만 달리면 닿을 수 있는 강원도 원주는 그래서 주말 답사지로 제격이다. 남한강 물결을 끼고 달리는 경치가 운치 있고 찾아가기도 쉬워서 폐사지 초행자에게도 부담 없다. 원주에만 폐사지가 100여 군데. 그 중에서 흥법사·법천사·거돈사 3대 폐사지는 서로 가까이 있어 반나절에 돌기 좋은 코스다. 비슷하면서도 제각각 다른 절터, 삼지삼색(三地三色)을 소개한다.

거돈사지: '가슴이 싸해지는 넓은 터'
‘절터의 황량함’을 제대로 느끼려면 거돈사지(居頓寺址)로 가야 한다. 높은 터에 오르자마자 맞닥뜨리는 황량한 풍경에 가슴까지 싸해질 정도로 광장 같이 넓고 스산하다. 멀리서 왼쪽으로 삼층석탑, 오른쪽으로 부처님을 모셨던 금당터와 석불대좌가 만드는 긴 일직선 구도를 보면 절이 얼마나 넓었는지 알 수 있다. 절이 사라진 거돈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천년 동안 절을 지키고 있었다는 느티나무. 입을 반쯤 떨군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터를 바라보면 겨울로 가는 길목이 보일 것 같다. 넓어서 어떻게 둘러봐야 할지 막막할 수 있다. 오른쪽부터 차근차근 밟아 나가는 것이 넓은 절터를 한눈에 바라보며 구석구석 둘러보기 좋다. 해질 무렵엔 꼭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절터 위로 하늘이 차츰 붉게 물들어 가는 장면을 멀리서 바라 볼 것.
거돈사는
절터에 남아있는 삼층석탑(보물 750호)의 양식을 보고 통일신라 후대에 세워진 사찰로 짐작한다. 절터 오른쪽 끝으로 올라가면 원공국사 승묘탑의 터가 남아있다.
원공국사의 유골을 모셨던 승묘탑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가져갔다 해방 후 1948년 다시 가져와 경복궁에 옮겼고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서두르면 승묘탑 터는 지나치기 쉽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절터도 볼 만하니 힘들어도 꼭 올라가 보자.
●찾아가는길-법천사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금새 이정표가 보인다. 영동 고속도로 문막 IC로 나와 부론면 방향으로 좌회전.
흥법사지: '시골마을에 녹아 든 절터' 안창리 시골길을 구불구불 들어가다 보면 멀리 튼실하게 쌓인 석축(石築)위로 석탑 윗부분이 살짝 보인다. 이랑이랑 빨갛게 열린 고추밭, 시골집 서너 채가 석축을 둘러싸고 있다. 석축 위로 올라가 절터에 서도 삼층석탑(보물 464호)과 귀부와 이수(거북모양의 비석 받침돌과 비석에 얹는 머릿돌·보물 463호)가 전부. 몸을 한 바퀴 휘 돌려도 시선이 닿는 절터가 20평이 채 될까 말까다. 너른 절터를 상상하다 시골 마을의 밭 두둑이 된 절터를 만나면 실망할 수밖에 없을 듯. 하지만 10분도 머물 수 없을 것 같지만 30분을 멀리서 바라보게 만드는 매력이 흥법사(興法寺) 터엔 있다.
첫 번째는 삼층석탑과 느티나무가 만들어내는 멋진 프레임. 멀리 떨어져서 왼쪽으로 삼층석탑과 오른쪽 느티나무를 한 프레임에 담아 바라보자. 모서리가 닳아 투박한 삼층석탑이 해질 무렵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느티나무와 어울린 장면은 수첩에 넣고 싶은 엽서 한 장이다.
두 번째는 마을 속에 녹아있는 절터 그 자체. 가을걷이한 배추와 깨가 귀부와 이수 옆에 그대로 쌓여있어 절터는 옛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석축 아래 멀찌감치 서서 터를 보면 민가와 배추·고추 밭 사이에 폭 파묻힌 폐사의 터가 고즈넉하다.
흥법사는
세워진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신라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사’에 937년(태조20년) 왕사(王師)였던 진공대사 충담(忠湛)이 입적하자 940년에 진공대사의 부도탑이 있는 원주 영봉산(靈鳳山) 흥법사에 태조가 직접 비문(碑文)을 지어 진공대사탑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폐사 시기도 임진왜란으로 추정할 뿐. 삼층석탑(보물 464호)과 진공대사탑비의 귀부·이수(보물 463)만 남아 있다. 염거화상탑(국보104), 진공대사탑(보물 365)과 진공대사탑비의 비신(碑身)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찾아가는길-영동고속도로 문막 IC에서 나와 우회전, 간현 관광지 방향으로 약 20여분 거리. 절터 들머리에 이정표가 있지만 민가와 섞여 지나치기 십상이니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볼 것. 나들목을 나가 10분 정도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섬강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지금은 물이 줄어 운치가 조금 덜하다. 하지만 절터가는 알록달록 가로수길 만해도 드라이브하기에 충분히 예쁘니까 실망하지 마시길.
법천사지: '하나씩 드러나는 옛모습'
발굴 중인 폐사지에선 볼 게 없다는 생각, 법천사지(法泉寺址)에서는 선입견이다. 5년 전부터 한창 발굴조사가 진행중인 법천사지는 곳곳이 파란 장막으로 덮여 있긴 하지만 점점 드러나는 옛모습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는 곳. 지난 17일 오후 찾은 절터에서는 발굴단이 돌을 나르고 흙을 다듬고 있었다. 2010년까지 10년을 목표로 시작한 발굴은 지금 5차 조사가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터만 7만9468㎡. 산이 둘러싼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찰이었던 셈이다. 이 넓은 터에 대웅전이 우뚝하고 목탁소리가 울려 퍼졌을 것을 상상하니까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발굴 현장에는 들어갈 수 없다.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곳은 지광국사 현묘탑비(국보 59호)가 있는 왼쪽 언덕. 강원도 문화재연구소 담당자는 “허균도 그 아름다움에 취해 해가 저물도록 어루만졌다는 지광국사 현묘탑비가 워낙 유명해서 그곳까지는 사람들 발길을 막을 수 없었다”고 했다.
모르고 지나치면 아쉬운 것은 탑 앞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석조물들이다. 연꽃이 새겨진 배례석(엎드려 절을 하는 돌), 모양이 제 각각인 주춧돌, 화불(化佛)이 희미하게 보이는 광배, 부도 등을 올리는 석등, 모란꽃 모양이 새겨진 아치형 조각 하나하나가 불교미술을 몰라도 아기자기 예뻐서 자꾸 보게 된다.
법천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져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초 학자인 유방선이 여기서 강학하였으며, 권람·한명회·강효문·서거정 등의 학자들이 이곳에 모여 시를 읊고 시문을 남겼다. 화려한 조각으로 유명한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101호)은 경복궁 뜰에 옮겨졌다. 마을 민가 마당에 있는 당간지주도 놓치지 말고 둘러보자.
●찾아가는길-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영동고속도로 문막 IC에서 나와 부론면 방향으로 좌회전. 20여분 가다 이정표를 보고 들어가면 왼쪽에 발굴중인 절터가 보인다.
원주=글·김연주기자 carol@chosun.com 사진·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기자 canyou@chosun.com    2006.11.22.